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들- 사랑, 죽음, 배신, 복수, 영웅, 파괴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프로이트와 융의 표현대로 인간들의 심리적 원형이며 무의식의 표현으로 가득하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도 당대와 그 이전부터 현존했던 동물들이 모티브가 된 것에서 완전한 상상의 모습까지 다양하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와 세월을 걸쳐 기록되어 온 이미지를 살펴본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전설과 상상의 동물 1편, 페가수스·그리핀· 케르베로스· 키메라 등
페가수스 (Pegasus)
페가수스는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린 메두사의 피에서 태어난 날개 달린 백마의 형상을 한 동물로 천마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 영웅 벨레로폰이 아테나가 준 황금 고삐로 페가수스를 길들였고, 벨레로폰은 페가수스를 타고 키메라를 물리쳤다.
이후 신들의 산 올림푸스를 향해 날다가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죽어 하늘의 페가수스 별자리가 되었다. 유니콘과 함께 말의 모습을 한 대표적인 환상종의 하나다.
케르베로스 (Cerberus)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 세계 지옥의 입구를 지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무시무시한 개의 모습으로 삼두견으로도 불리고 흔히 켈베로스라고도 한다. 구전에 따라 수십 개의 머리, 독사의 꼬리, 뱀의 갈기에 사자의 발톱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세 개의 머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거나 출생, 젊음, 노년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지하세계의 입구에서 살아있는 자들을 막고 죽은 자들은 나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헤라클레스가 받은 12 과업 중 마지막 임무로 케르베로스를 기절시켜 생포해 왔다가 다시 지하세계로 돌려보냈다.
키메라, 키마이라 (Chimera)
키메라는 사자의 몸과 머리, 등에는 불을 내뿜는 염소나 산양의 머리, 뱀의 꼬리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튀르키예의 올림푸스 산(올림푸스 산의 명칭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 있다) 인근 리키야 지방에서 활동했는데 사자는 봄, 염소와 산양은 여름, 뱀은 겨울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지만 흉폭하고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결국 페가수스를 탄 벨레로폰에게 납덩이를 꽂은 창에 의해 키메라가 죽고, 이것은 혼돈과 파괴에 대한 질서와 문명의 승리로 표현된다. '키메라'라는 용어는 기괴하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창조물로 자주 등장한다.
그리핀 (griffin), 그리폰
사자의 몸과 독수리(매)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상상의 동물로 그리핀은 힘, 용기, 수호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서 그리핀은 보물과 신성한 장소를 지키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들짐승의 왕(사자)과 날짐승의 왕(독수리)을 결합한 강력한 수호자의 상징은 중세 유럽에서 정형화되었는데, 독수리, 매, 사자가 힘과 용기, 지혜와 위엄 등을 상징하며 중세 문장(가문이나 국가를 상징하는 기호나 그림)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Andrew Lang,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네메아의 사자 (Nemean Lion)
튀폰과 에키드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키메라, 케르베로스, 스핑크스, 히드라, 오르토스와 남매지간이 된다. 커다란 덩치와 창이 박히지 않을 정도의 튼튼한 가죽을 가진 괴물로 당시에도 실존했던 사자에서 모티브가 된 걸로 보인다.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12 과업의 첫 상대로 헤라클레스가 30일간의 전투 끝에 겨우 쓰러트릴 정도로 네메아 지방에서 공포의 영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고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고, 제우스는 네메아의 사자를 별자리로 만들었다.
칼리돈의 멧돼지 (Calydonian Boar)
칼리돈의 왕 오이네우스가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제사를 거르자 분노한 아르테미스가 칼리돈의 땅을 황폐화시키려 보낸 멧돼지이다. 황소만 한 덩치에 코끼리의 상아 같은 어금니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르테미스의 신수(神獸)인 이 멧돼지를 잡기 위해 당대 그리스의 영웅들이 사냥에 나섰고, 멜레아그로스에게 달려들던 멧돼지에게 처녀 신궁(神弓) 아탈란테가 화살을 날려 상처를 입혔고 결국 멜레아그로스가 창으로 멧돼지를 잡았다.
스핑크스 (Sphinx)
인간(여성)의 얼굴, 암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뱀의 꼬리를 한 형상으로 주로 묘사된다. 스핑크스는 본래 그리스 신화의 '수수께끼의 스핑크스'에서 유래했는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등의 전설에서도 인간과 사자의 혼합된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가정의 신 헤라가 문란했던 테베의 왕 라이오스를 벌하기 위해 이집트의 괴물 스핑크스를 보냈고, 테베 근처에서 여행자에게 수수께끼를 내던 스핑크스는 라이오스의 아들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맞히자 분을 참지 못하고 절벽아래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히드라 (Hydra)
잘라도 다시 재생되는 독사의 머리를 가진 괴물로, 널리 알려진 건 9개의 머리지만 수십 개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도 전승되었다. 히드라의 맹독은 너무나 강력하여 신들조차 두려워했다고 한다.
히드라를 처치하라는 두 번째 과업을 수행하던 헤라클레스는 잘라도 계속 재생되는 히드라의 머리 때문에 고전하다가 결국 히드라를 땅속 깊이 묻고 그 위에 거대한 암석으로 봉인해 버렸다. (헤라클레스는 첫 번 과업에서 죽인 네메아의 사자 가죽으로 무장해 있었기 때문에 히드라의 맹독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헤라클레스도 히드라의 독이 묻은 옷을 입고 그 맹독에 고통받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사제들에게 자신을 산채로 화장하라 지시하고 장작더미 재단에 최후를 맞으며 맹독의 고통을 끝냈다.
메두사 (Medusa)
메두사는 살아있는 뱀의 머리카락과 자신을 보는 사람을 돌로 만드는 눈을 가진 괴물로 묘사된다.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메두사를 처치하기 위해 나서는 페르세우스에게 신들은 여러 무기를 제공했다.
아테나의 거울 방패, 헤파이스토스의 검,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과 강철 낫, 하데스의 투명 투구, 헤라의 마법 주머니 등을 제공받은 페르세우스는 결국 메두사의 목을 쳐 처치했지만 메두사의 잘린 머리는 여전히 그 힘을 유지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칠 때 뿜어져 나온 피가 바다에 뿌려지고 거기서 페가수스가 탄생했다.
켄타우로스 (Centaurus)
인간의 상체와 말의 하체를 가진 모습으로, 제우스가 자신의 아내 헤라에게 흑심을 품은 인간 익시온을 시험하기 위해 구름을 헤라로 둔갑시켜 보냈고, 그 구름과 익시온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켄타우로스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강한 전투력을 지녔고 야성적이며 욕망에 본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들의 가르침으로 궁술, 의학, 음악 등 다방면에 뛰어나 그리스 신화 속의 많은 영웅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켄타우로스의 이중성은 지적 추구와 원초적 본능 사이의 균형을 나타내며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강조한다.
▶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올림푸스 12신
▶ 또 다른 전설과 상상의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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