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 디자인

생의 불꽃을 피우다 단명, 요절한 유명인들, 미술 클래식음악 분야

by 난파선장 2023. 9. 15.
반응형

마음을 허무는 그림,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 감동을 전하는 글귀 등 우리에게 진한 울림을 전해주는 예술을 온몸으로 토해내다 짧은 생을 마감하는 이들을 아쉽게도 자주 접하게 된다.

생의 불꽃을 피우다 요절, 단명한 유명인 예술가들을 분야별로 알아본다.

자화상_에곤_실레
에곤 실레의 자화상, 1912

Egon Schiele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생의 불꽃을 피우다 단명, 요절한 유명인들, 미술 클래식음악 분야

     

    미술 분야


    카라바조 (1571~1610)
    Caravaggio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화가로, 빛과 어둠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강렬한 명암의 극적 분위기를 표현하는 양식인 테네브리즘의 기초를 쌓았지만 39세로 단명했다.

    결투와 싸움에 자주 휘말리는 거친 성격 탓에 그의 사망원인으로 살해, 납 중독 등 여러 설이 있었다. 가장 최근의 연구 결과로는 싸움에서 입은 상처의 패혈증이 사망원인으로 발표되었다.


    툴루즈 로트렉 (1864~1901)
    Toulouse-Lautrec

    어릴 적 사고로 성장이 멈춰버린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툴루즈 로트렉. 댄스홀 물랭 루즈와 사창가 등 파리의 밤문화에 몸을 던지고 자유 분방함을 화폭에 담았던 로트렉은, 매독과 알콜중독으로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하다가 건강을 잃고 37세로 숨을 거뒀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1920)
    Amedeo Modigliani

    길쭉하게 양식화된 유니크한 초상화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잔잔하게 배어 나오는 우울함과 우아함이 특징이다. 그는 결핵과 약물 남용이 겹쳐 3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에곤 실레 (1890~1918)
    Egon Schiele

    표현주의적이고 에로틱한 작품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화가인 에곤 실레의 경력은 많은 논란으로 채워져 있다. 실레는 도발적이고 불안한 방식으로 인간의 모습을 강렬한 선들로 묘사했다. 불과 28세의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짧고 강렬한 생을 마감했다.


    펠릭스 누스바움 (1904~1944)
    Félix Nussbaum

    독일계 유대인이었던 누스바움은 나치의 압박을 피해 벨기에로 망명했으나, 1940년 독일의 벨기에 침공 시 체포되었다. 독일 송환 기차에서 간신히 탈출해 아내와 브뤼셀에 은신하다 결국 체포되어 1944년 39세의 나이에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살해당했다.

    펠릭스 누스바움의 작품들은 나치에 압박받고 쫓기던 당시의 공포를 적나라하고 가슴 아프게 초현실적인 화풍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화상_펠릭스_누스바움
    펠릭스 누스바움의 자화상, 1940

    Felix Nussbaum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프리다 칼로 (1907~1954)
    Frida Kahlo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는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은, 사고로 인한 거동의 불편과 반복되는 수술의 고통, 애증으로 점철된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 생활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고독의 연속이었다.

    폐렴이 악화되어 고열에 시달리던 1954년 밤, "행복한 출발을 기대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기대한다"던 칼로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47세의 생을 마쳤다.


    키스 해링 (1958~1990)
    Keith Haring

    미국의 그래피티 예술가이자 사회 활동가인 키스 헤링은 에이즈 지원, 아파르트헤이트, 반핵윤동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포함한 주제들을 그의 그래피티에 담았다.

    뉴욕의 지하철, 학교나 병원의 벽 등에 그려진 해링의 그림은 미술이 대중과 좀 더 가까워지질 갈망했다. 그는 1980년대에 큰 명성을 얻었지만 31세의 나이에 에이즈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 미셸 바스키아 (1960~1988)
    Jean-Michel Basquiat

    198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미국의 예술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는 신표현주의 스타일의 그래피티로 유명하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며 지하철과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20세 초반부터 극찬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과 공동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27세에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요절했다.

     

    반응형

     

    클래식음악 분야


    루이 쿠페렝 (1626~1661)
    Louis Couperin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루이 쿠프렝은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다. 바흐와 헨델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던 쿠프렝은, 다수의 클라브셍(쳄발로)과 오르간 연주곡을 남겼지만 35세로 요절했다.


    헨리 퍼셀 (1659~1695)
    Henry Purcell

    17세기 영국 최고의 작곡가로 '영국의 바흐'라고도 불리는 헨리 퍼셀은, 오페라의 시초 격인 가극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세미 오페라 <요정 여왕> 등 뛰어난 작품을 많이 작곡했지만, 결핵으로 36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1710~1736)
    Giovanni Battista Pergolesi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곡가로 미사곡 <스타바트 마테르>, 오페라 <머님이 된 하녀>, <사랑하는 오빠> 등을 남겼지만, 결핵으로 26세에 요절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
    Wolfgang Amadeus Mozart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신의 천재 음악가로 음악과 자유의 프리메이슨이었던 그는,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에서 레퀴엠까지 수많은 명곡을 남겼고, 안타깝게도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모차르트의 사인은 연구자에 의해 급성 류마티스 열, 연쇄상구균 감염, 수은 중독 등 많은 원인이 거론되지만 정확한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마리아 시마노프스카 (1789년~1831년)
    Maria Szymanowska

    폴란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시마노프스카는 뛰어난 연주로 19세기 초 최초의 프로 연주자로 칭송받았고, 많은 피아노 작품을 남겼다. 베토벤, 쇼팽, 로시니, 훔멜, 괴테 등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41세에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다.


    프란츠 슈베르트 (1797~1828)
    Franz Schubert

    오스트리아의 초기 독일낭만파 작곡가다.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미완성 교향곡>, 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겨울나그네> 등을 작곡했고, 특히 600여 곡이 넘는 가곡으로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장티푸스로 인하여 31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펠릭스 멘델스존 (1809년~1847년)
    Felix Mendelssohn

    19세기의 모차르트라 불릴 만큼 뛰어난 천재성에 은행가 집안의 재력까지 더해져,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남부러울 것 없는 꽃길을 걸은 독일의 작곡가이다.

    17세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바로 <한여름밤의 꿈, 서곡>을 작곡했고,  여행을 통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탈리아 교향곡>, <핑갈의 동굴(헤브리디스 서곡)>을 작곡했다. 또한 지휘자로 활동하며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활동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며 오케스트라를 성장시켰고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창설해 인재를 양성했다. 가족력으로 의심되는 일련의 뇌졸중으로 38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로베르트 슈만(1810~1856)
    Robert Schumann

    독일의 작곡가, 음악 평론가로 활동한 낭만파 음악의 대명사다. 슈만은 멘델스존과 함께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신의 피아노 스승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 클라라 비크와의 결혼을 위해 소송까지 간 사건은 유명했다(스승의 완고한 결혼 반대로 슈만은 소송을 통해 결혼을 인정받고 결혼했다).

    하지만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던 아내 클라라에 대한 애정과 질투의 복잡한 감정은, 슈만의 방탕했던 젊은 시절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매독과 관련된 수은 중독이 더해져 우울증을 악화시켰다.

    1954년 라인강에 투신했던 슈만은 구조되어 요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46세의 나이로 단명했다.


    조르주 비제 (1838년~1875년)
    Georges Bizet

    프랑스 파리 출생의 작곡가로 젊은 나이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던 비제는, 가극 <진주잡이>와 모음곡 <아를의 여인> 등의 발표에도 당시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875년 초연되었던 오페라 <카르멘>은 비평가들에겐 찬사를 받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카르멘> 초연 3개월 후, 37세의 나이에 심장 마비로 사망한 조르주 비제는 결국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오페라 <카르멘>의 인기를 보지 못하고 사망한 셈이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1839년~1881년)
    Modest Mussorgsky

    러시아 근대 인상파 음악의 선구자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가극 <보리스 고두노프>,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 등을 작곡했다. 신경쇠약과 음주벽이 있던 무소르그스키는 대부분 외롭고 고독한 생활을 이어갔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발작으로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기욤_르쾨
    기욤 르쾨, 1886

    Studio Émile Rat, Poitier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기욤 르쾨 (1870년~1894년)
    Guillaume Lekeu

    벨기에 태생의 작곡가인 기욤 르쾨는 15세부터 작곡을 시작해, 23세에 벨기에의 바이올린 거장 외젠 이자이로부터 작곡을 의뢰받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바이올린 소나타 G장조). 피아노곡과 실내악, 협주곡, 합창곡등 50여 작품을 남겼고 장티푸스로 인해 24세에 사망하면서 많은 미완성 작품을 남겼다.

     

    대중음악, 영화, 문학 분야는 → 다음 편

     

    반응형

    댓글